hotel sacher kuchen
나는 멀리 유럽에서 근 10여년을 공부하고 일하며 나의 20대를 보냈다.
공부하던 시절 학기중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돈으로 방학에는 유럽의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그땐.. 혼자서 그렇게 돌아다니고 경험했던 나의 시간들을... 언젠가는 누군가와 밤새 이야기하면서
풀어낼 날이 올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날은 쉽게 오지 않는것 같다.
며칠째 남편과 냉전 중이다.
결혼하고 첫 냉전인것 같다. 나는 이렇게 며칠동안 말도 안하고 서로 눈도 안마주치는 관계로 지내는것이 참 불편하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질질 감정을 끌고 시간을 끄는것도 싫다.
뭐.. 이런상황에서 갑작스레 저 케익 생각이 나서 책상에 앉았다.
가난한 유학생이 그렇게나 자유롭게 여행을 훌쩍 떠날 수 있었던건 아주싼 비행기표가 있었기 때문인데 나는 몇달전에 1유로짜리 비행기표를 먼저 구해서 방학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어느 여름의 방학이었나? 그날은 무엇때문인지 밤새 딴짓을 하다가.. 빈으로 가는 새벽 비행기를 놓칠 뻔 했다가... 훌러덩 바지만 갈아입고 냅다 뛰어 기숙사앞 전철을 잡아타던 내가 생각난다.
잠도 덜 깬 채로.. 나의 빈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제 이것도 꽤 오래전의 이야기라... 그 아름답던 시간들도 가물가물해져 간다는걸 지금 이순간 깨달았다..
내가 호텔 자허 앞에서... 저 맛있어 보이는 케익을 맛보자고 찾아갔던 그 호텔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저 쇼윈도우에 전시해둔 까만 케익을 바라보며... 그 깊은 향을 생각하고 진한 맛을 상상하며... 그걸로 충분히 만족했던 아닌 그렇게 만족하자고 했던 그떄의 내 뒷모습이 보인다.
그때 내가 그 케익을 카페에 앉아 맛보았더라면, 지금 내가 진한 초코케익을 일상에서 마주할때마다 느끼는 뭉클함과 약간의 기대와 씁쓸한 끝맛을 상상하게 되는 버릇은...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온다면... 기꺼이 여유롭게 호텔자허 카페에 앉아 커피한잔과 저 케익 한조각을 먹어보고 싶다.
여기까지 온김에... 그떄의 여행 이야기를 조금 더 생각나는대로 적어본다면...
나는 자전거를 빌려서 빈을 돌아다녔고, 저녁에는 작은 음악회에도 갔었다. 식사는 근사하게는 할 수 없었던 처지였기에.. 그저 길거리에서 빵이나 뜯었을거다.
자전거로 둘러보는 빈의 모습들이... 잠깐잠깐씩 스쳐지나가는거 같다. 아마도 찾아보면 어딘가에 찍어둔 사진들도 있을텐데 말이다.
그렇게 빈을 둘러보고.. 차를 빌려타고 그라츠에도 다녀왔다.
그날 비가 억쎄개 왔고.. 나를 그라츠까지 차로 태워준 남자는 Mitfahren 이 처음이었던 사람이라 그런지... 뭔가 나와의 만남을 꽤나 기대하고 있었던듯 했다.
솔직히 그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살짝 무서웠고, 또 그날... 차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오스트리아에서 어떤 아이가 오랫동안 감금되어있다가.. 극적으로 발견되어 떠들석한 사건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옆에 아저씨는 연신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떠듬떠듬... 그 대화를 이어나갔고, 살짝 피곤했고...
그리고... 마지막에 무사히 그라츠에 도착했을떄, 그리고 그가 너무나 친절하게도 비가 많이 와서.. 나를 내가 묵을 숙소 앞까지 데려다 주어서 너무 다행이고 감사했고,
아마 그떄 나는 나를 태워다준 그에게 5유로와 감사의 마음으로 집에서 챙겨나온 초콜렛 한덩이를 그것도 허리가 반으로 뚝 부러진.. 한덩이를 건냈다.
그리고 그라츠에서도 역시 자전거를 빌려 도시를 돌아다녔더랬지...
그라츠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바람을 맞던 나도... 이제 기억이 난다.
그 도시와 너무나도 잘 어율렸던 나의 카키색 바지와 빨간 구두도 기억이 난다.
(그 카키색 바지는 결국에 런던에다가 벗어놓고 잃어버렸다.)
조각조각의 기억들... 그리고 그 여행에서 아직 나에게 남아있는것들.
그래 참 멋진 시간들이었고, 아름다운 길들이었다.
지금 내가 남편과의 냉전으로 차가운 거실에서 홀로 다가오는 월요일에 어깨가 무겁고 내일이 걱정되는 지금 이순간... 그떄의 시간들과 그 길들은 너무나 딴 세상같지만...
분명 그 시간과 그 길을 지나서 나는 여기까지 왔구나~~~ 생각하니... 참 갑자기 막 뭉클뭉클 하다.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그때의 나의 고독과 외로움을 보상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건 나만의 생각일 뿐.
결국 현실은 여기다 이렇게 요란스러운 키보드질로 떠들어대고 있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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